작성일
2012.04.05
수정일
2012.04.05
작성자
인문학연구소
조회수
707

[책] 여성, 타자의 은유/ 김애령, 그린비, 2012

철학에서 여성은 어떻게 타자화되어 왔는가?

주체와 타자, 그 ‘사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통섭’이 학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기술의‘컨버전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혼종성’은 피로에 빠진 문화를 구원할 새로운 가치로서 각광받고 있다. 근대 문명이 구축해 놓은 강력한 경계선들이 해체되는, 바야흐로‘탈경계’의 시대다. 하지만 탈경계가 단순히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경계 안쪽의 대상에 대한 면밀한 탐구와 경계 바깥의 존재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포함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역들의 경계가 날카로운 선으로 그어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틈새와 여지를 품고 있음을, 그리고 그 ‘사이’에 담겨 있는 풍요로움을 읽어 내야 함을 의미한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http://eih.ewha.ac.kr)에서 기획한‘사이 시리즈’는 바로 이 ‘사이’라는 공간과 주제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컨셉의 대중 인문 교양서이다. 시리즈의 각 권은 두 개의 키워드를 설정하고 그 ‘사이’에서 어떠한 상호작용이 오가고 관계가 구성되는지, 나아가 어떠한 새로운 존재와 사유가 싹트는지를 자유롭게 탐사한다. 또한 이 시리즈는 전문 지식과 교양의 ‘사이’를 지향한다. 인문학과 타 학문, 학문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독자들과 폭넓게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주체와 타자 사이’,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 ‘지각과 매체 사이’, ‘인간과 기계 사이’, ‘예술과 기술 사이’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가지고 매년 3~5권씩 이어질 예정이다. 다양한 분야의 소재와 그것들의 ‘사이’를 분석하는 독특한 방법론들을 통해 독자들은 일상과 사회에 그어진 수많은 경계들에 대해 성찰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 책 『여성, 타자의 은유: 주체와 타자 사이』는 스스로 엄연히 생각하는 ‘주체’이면서도 자신이 읽는 텍스트 속에서는 철저히 ‘타자’일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 철학자의 고민이 생생히 녹아 있는 책이다. 서구 근대철학은 주체의 동질성을 확증하기 위한 여정에 다름 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타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비판 역시 꾸준히 이어져 왔다. 타자의 윤리를 고민한 에마뉘엘 레비나스, 고정된 것의 허구성을 폭로해 온 프리드리히 니체,‘차이’(diff?rence)를 넘어 ‘차연’(diff?rance)을 사유했던 자크 데리다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타자의 고정 불가능성, 변화무쌍함, 다성성(多聲性)에 주목했던 이 철학자들 역시 ‘타자에 대해 말하는 순간 타자가 주체의 시선으로 재현되어 버리는’ 딜레마를 피해 갈 수 없었고, 이에 타자는 ‘은유’라는 우회로를 통해서만 묘사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은유의 전략에 단골로 불려 나온 것이 바로 ‘여성’이었다.

레비나스는 『시간과 타자』에서 타자의 규정 불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끌어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하여 많은 글들에서 ‘여성 혐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니체는 삶의 비밀스러운 역동성을 여성에 빗대어 찬양했다. 이러한 니체의 글을 꼼꼼히 분석한 데리다 역시 『에쁘롱』에서 ‘철학은 여성적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유들 속에서 과연 ‘주체로서의 여성’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철학을 공부하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그들의 사유에 공감하는 독자로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은유로만 소비되는 당혹감을 어찌해야 할까?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천착하여 레비나스, 니체, 데리다의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독해함으로써 철학사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탈각되어 왔음을, 그리고 주체와 타자의 강력한 이분법 속에 은폐되어 있었던 존재들의 목소리를 발굴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문제의식은 ‘여성’에 밀착되지만, 실상은 우리 모두에게 부합한다. 그것은 타자란 존재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주자, 난민, 소수자 등 주변화된 특정 집단의 형태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자 권력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스스로가 타자일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둘 것을, 그리고 ‘사이’의 존재들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이를 곧 ‘타자의 윤리학’을 보완하고 풍부화하는 ‘사이의 윤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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