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표음 문자로, 중국에서 빌려온 한자에 소외되던 민중에게 자신의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글자를 제공한 뛰어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음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데리다의 견지에서는 이 한글 창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데리다의 시각에서, 한글 창제 자체가 아니라 한글을 음성중심주의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당연히 비판 대상이 된다. 한글이 백성의 ‘음성’을 재현하는 역할을 하고 그런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보는 생각이 문제라는 말이다. 한글의 의의는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은 다른 표음 문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을 규정하고 제어한다. 그 됨됨이가 훌륭한 만큼, 한글은 오늘날 우리가 말을 배우고 구사하는 뛰어난 바탕이 된다. 음성 언어의 기초가 되는 문자 언어의 면모를 지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글은 데리다가 말하는 에크리튀르에 속한다. 한글은 에크리튀르의 한 빼어난 현상 형태다. 에크리튀르는 어떤 문자 언어의 외형뿐 아니라 그 구성 방식과 변이의 구조까지 포괄하는 깊이와 폭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글은 데리다가 루소를 통해 부각시킨 ‘위험한 대리 보충(suppl?ment dangereux)’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백성의 소외된 목소리를 구하기 위해 호출되었으나 그렇게 기원으로 여겨진 목소리를 규제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렇게 볼 때, 한글이 다만 우리의 목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기원’의 신화에서 헤어나지 못한 견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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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때 나왔던 질문과 당시에 부족했던 답변을 간단히 정리해 본 것입니다. 이런 '보충'의 방식 또한 말과 글에 대한 데리다의 사고에 부응(!)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데리다의 견지를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